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볼라벤이라고 했던가.

혹자는 콜라겐이라고도 했다는...엄청난 크기의 태풍이라며 연일 방송에서는 태풍 대비에 관한 뉴스가 끊이질 안았다.

유리창에 젖은 신문을 붙이세요. 엑스자 모양으로 테이프를 붙이세요. 되도록 외출은 삼가하시구요.

전국의 모든 유치원, 초등학교는 임시 휴교령이 내리기도 했다.

솔직히 살짝 무서웠다.

대체 얼마나 쎈놈이길래...저놈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또 얼마나 여기저기서 피해가 날것이며

사람들이 힘들어할까.

 

 

 

 

 

 

살고 잇는 집 옥상에 조그만 텃밭이 있다.

호박, 오이, 가지, 고추, 부추를 경작하고 있다.

6월의 어느 햇살 좋은날 8차선 큰 도로에서 혼자 길을 잃고 헤매던 닭 한마리는 이를 불쌍히 여기신 우리 아버지에게

간택을 받아 이 텃밭에 오게되었다. 넓고 조용한 주거환경. 하루종일 쏟아지는 햇살, 깨끗한 공기, 푸른 하늘 시원한 그늘, 그리고 텃밭의 채소들까지 이 모든 것이 기순이라고 이름지어진 그 암탉의 것이었다.

 

그날 부터 아버지는 기순이가 좋아한다는 참외 껍질, 감자, 밥을 갖다 나르셨다.

그리고 며칠 후 신선한 계란을 얻어야겠다며 성남 시장에서 수탉, 암탉 각각 한마리씩 더 영입하셨다.

 

기순이, 기남이,

겨우 며칠 차인데 먼저 온 기순이의 텃세가 대단했다.

밥 먹을 때면 다른 두 녀석들을 얼씬도 못하게 했는 데 특히 암탉에게 몹시 심했다.

그렇게 며칠을 그렇게 한달을 그렇게 두달여가 되었을 때

기순이는 튼실하게 살이 올라가는 반면 두 녀석을 점점 야위어 갔다.

 

"언제 잡을 거예요?"

"복날 잡아야지"

"쟤들은 잡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잘도 받아 먹네요."

"유기농이라 맛있겠어요.'

"그럼요,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먹이고 있는 데"

 

 

(사진은 기순이)

 

 

그렇게 복날이 다 지나갔지만 아버지가 처음에 기대했던 신선한 달걀은 도무지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왜 알을 못낳지?"

"글쎄..."

 

다시 하루,,,,이틀,,,,삼일,,,,일주일

 

"왜 알을 못낳죠?" 

"그게...시장에서 잘 못 줬단다. 둘다 암탉이었어."

"오...이런..."

 

 

"왜 잡지 않는 거죠?"

"이제 곧 잡을 거야"

 

다시 하루, 이틀, 삼일...일주일

 

"왜 잡지 않는 거예요?"

"...."

 

 

그건 저 닭순이 닭돌이 (이건 내가 붙인 이름이다)와 정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들의 민원이 접수 되었다.

 

"닭냄새가 나요.." "닭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아아- 키워 본 사람만이 안다.

 

그날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하필 바람이 몹시 불던날 옥상에서는 피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나는 끔찍해서 올라가보지도 못했다.

 

"꼭 오늘 같은 날 잡아야해요?"

 

안그래도 무서운 바람이라는 데 게다가 피바람이라........니.

 

 

그리고 다음 날...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을 찾아왔다.

아...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도 먹긴해야지

진짜 백퍼센 유기농 영계 닭도리탕.

 

"왜 이리 찔기지요?"

"찔기다니~~신선해서 쫄깃한거야"

 

생고무 씹은 것처럼 얼얼하게 쫄깃했다. 

 

 

 

 

 

 

 

 기순이와 닭돌이 닭순이를 위한 추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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